트럼프 베네수엘라 석유 650억 배럴 통제, 세계 최대 매장량인데 왜 당장 못 쓰나? 초중질유·노후시설과 국제유가 전망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확인 원유 매장량 가운데 650억 배럴 이상에 대해 과반 통제권을 확보하는 합의를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숫자만 보면 엄청납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수준의 원유 확인매장량을 가진 나라이고 미국이 그 가운데 상당 부분에 장기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면 국제유가와 미국 휘발유 가격, 정유산업까지 바꿀 수 있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땅속에 석유가 많다’는 것과 ‘그 석유를 당장 하루 수백만 배럴씩 시장에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현재 베네수엘라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도 바로 이것입니다.
미국이 확보했다는 650억 배럴은 얼마나 큰 규모일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민간기업의 협력을 통해 베네수엘라 확인 원유 매장량 가운데 650억 배럴 이상에 대한 미국의 과반 통제권을 확보했다고 밝혔습니다.
베네수엘라 측에서는 17개 전략 유전을 개발하고 약 1,000억달러 규모의 민간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놨습니다.
현재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원유 매장국 가운데 하나지만 실제 생산량은 하루 약 125만 배럴 수준입니다.
과거 베네수엘라는 하루 300만 배럴 이상을 생산한 적도 있습니다.
즉 문제는 석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오랜 기간 생산시설과 투자, 기술, 법적 환경이 무너졌다는 데 있습니다.
베네수엘라 석유가 ‘질이 나쁘다’는 말은 맞을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립니다.
베네수엘라의 대표적인 오리노코 벨트 원유는 일반적으로 초중질유에 해당합니다.
원유는 API 비중이라는 수치로 무거운 정도를 비교하는데 수치가 낮을수록 무겁고 끈적한 원유입니다.
베네수엘라의 대표 유종 Merey-16은 API 비중이 약 15.9도이고 황 함량은 약 2.7%입니다.
Boscan은 API 약 10.7도, 황 함량 약 5.2% 수준입니다.
일반적인 경질유보다 훨씬 무겁고 황도 많습니다.
그래서 땅에서 뽑은 뒤 바로 일반 정유공장에 넣어 휘발유와 경유를 생산하기가 어렵습니다.
희석제를 섞어 움직일 수 있게 하거나 업그레이더를 거쳐 원유를 가볍게 만들어야 하고, 정유 과정에서도 코킹 설비 같은 복잡한 시설이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흔히 베네수엘라 석유의 질이 좋지 않다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쓸모없는 석유’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미국 정유사에는 꽤 필요한 원유입니다
미국은 셰일혁명 이후 경질유 생산이 크게 늘었습니다.
반면 미국 걸프 연안에는 과거부터 베네수엘라·멕시코·캐나다 등의 중질유를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복합 정유시설이 많습니다.
즉 미국에서 생산하는 가벼운 셰일오일과 베네수엘라의 무거운 원유는 성격이 다릅니다.
베네수엘라 중질유는 미국의 일부 걸프 연안 정유시설에서 오히려 필요한 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도 베네수엘라 중질유는 미국 Gulf Coast 정유시설과 궁합이 좋고 미국의 경질 셰일유와 혼합해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문제를 ‘원유 품질이 쓰레기라 못 쓴다’고 설명하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처리비용이 많이 들고 특정 정제설비와 희석제가 필요한 고난도 원유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진짜 문제는 유전보다 인프라입니다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은 수십 년 동안 투자 부족과 국영기업 PDVSA의 경영 문제, 숙련인력 이탈, 미국 제재 등이 누적됐습니다.
원유 생산을 늘리려면 유정 하나만 새로 뚫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유정과 펌프, 송유관, 전력망, 희석제 공급망, 업그레이더, 저장탱크, 항만, 수출시설까지 하나의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베네수엘라는 전력망 자체도 안정적이지 않고 송유관과 항만시설도 상당한 투자가 필요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최근에는 석유 데이터와 운영시스템까지 노후화돼 미국 석유서비스 기업 SLB가 PDVSA의 유전 데이터를 현대화하고 디지털화하는 계약까지 추진하고 있습니다.
즉 미국 기업이 자본을 투입하겠다고 결정하더라도 바로 다음 달부터 수백만 배럴을 추가 생산하는 구조가 아닙니다.

그러면 2~3년이면 가능할까?
일부 기존 유전은 가능합니다.
대표적인 기업이 Chevron입니다.
Chevron은 이미 운영 중인 베네수엘라 사업의 장비를 개선하면 약 2년 동안 생산량을 현재보다 50%가량 늘릴 수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스페인 Repsol도 기존 생산량을 2~3년 안에 약 3배까지 늘릴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생산하고 있는 유전과 기존 인프라를 활용하는 경우입니다.
새로운 지역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고 국가 전체 생산량을 과거 수준으로 되돌리는 문제는 훨씬 어렵습니다.
단기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증산은 전체 국제 원유시장을 완전히 뒤집을 정도의 규모가 아닐 수 있습니다.
베네수엘라 전체 증산은 5~7년까지 볼 수 있습니다
올해 초 Reuters가 인용한 에너지 전문가 분석에서는 정치적 전환이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외국기업 투자가 정상화되는 가장 긍정적인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베네수엘라 전체 원유생산이 의미 있게 크게 증가하는 데 5~7년 정도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이것도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조건입니다.
법과 세제 개편이 필요하고 외국 기업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확신도 줘야 합니다.
과거 베네수엘라 정부가 ExxonMobil과 ConocoPhillips 등의 자산을 국유화하면서 국제 석유기업들은 막대한 손실을 경험했습니다.
ConocoPhillips는 과거 자산 수용과 관련해 여전히 막대한 금액을 받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석유회사가 수십억달러 규모의 시설을 짓기 위해서는 대통령 한 명의 발표보다 장기간 계약을 지켜줄 수 있는 법적 안정성이 중요합니다.
이번 트럼프 합의에도 아직 확인되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현재 공개된 내용을 보면 미국이 정확히 어떤 법적 방식으로 650억 배럴을 ‘통제’하는지 세부 구조가 모두 공개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유전이 포함되고 어떤 미국 기업이 참여하며 수익을 어떤 방식으로 배분할지도 추가 확인이 필요합니다.
베네수엘라 헌법과 새로운 탄화수소법 아래에서 미국 정부가 유전을 직접 임차하는 형태가 가능한지도 논쟁이 있습니다.
따라서 650억 배럴이라는 숫자를 미국이 곧바로 소유해 마음대로 생산할 수 있는 원유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현 단계에서는 미국 기업들의 장기 개발권과 공급 접근권을 확보하려는 큰 틀의 합의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국제유가는 당장 폭락할까?
제 생각에는 단기적으로 국제유가를 크게 떨어뜨리는 재료로 보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8월 28일 브렌트유는 배럴당 89.31달러, WTI는 83.40달러 수준에서 거래를 마쳤습니다.
베네수엘라 공급 확대 기대도 유가 하락 요인 가운데 하나지만 현재 원유시장을 가장 크게 움직이는 것은 여전히 이란과 호르무즈 해협입니다.
전쟁 이전에는 세계 원유 공급의 약 2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습니다.
현재 운송량이 일부 회복되고 있지만 정상 수준은 아닙니다.
중동 공급차질이 몇 백만 배럴 규모로 발생하는 상황에서 베네수엘라가 내년에 10만~20만 배럴을 추가 생산한다고 해도 모든 부족분을 상쇄하기는 어렵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베네수엘라가 하루 수백만 배럴 생산국으로 돌아온다면 국제유가의 상단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몇 달이 아니라 수년 단위의 이야기입니다.
미국에는 왜 중요한가?
미국 입장에서는 단순히 국제유가를 낮추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습니다.
베네수엘라는 미국 걸프 연안 정유시설과 지리적으로도 가깝습니다.
중동에서 원유를 가져오는 것보다 운송거리가 짧고 미국 정유시설이 중질유 처리 능력도 갖추고 있습니다.
또 미국 전략비축유 SPR는 최근 약 2억9천만 배럴 수준까지 내려오면서 장기간 전쟁과 긴급 방출로 상당히 줄어든 상태입니다.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베네수엘라 공급망을 확보하면 미국의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의미가 큽니다.
제가 본다면 ‘650억 배럴’보다 시간을 보겠습니다
이번 뉴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숫자는 분명 650억 배럴입니다.
하지만 투자자 입장에서 더 중요한 숫자는 몇 년이 걸리느냐라고 생각합니다.
기존 Chevron 사업장은 2년 정도면 생산을 어느 정도 늘릴 수 있습니다.
일부 프로젝트는 2~3년이면 증산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전체 석유산업을 복원해 세계 원유시장에 구조적인 공급 증가를 만들어내려면 5~7년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국제유가를 본다면 지금 당장 ‘베네수엘라 원유가 풀리니 유가는 폭락한다’는 방향으로 대응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단기적으로는 호르무즈 해협과 이란, 러시아 정유시설, 미국 전략비축유가 더 강한 변수입니다.
다만 미국 기업의 투자가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고 Chevron과 다른 석유기업의 생산목표가 구체화되기 시작한다면 몇 년 뒤 세계 원유시장의 공급구조는 지금과 상당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석유가 없는 나라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석유를 갖고 있지만 그것을 경제적으로 꺼내고 운반하고 정제할 수 있는 시설과 제도를 잃어버린 나라에 가깝습니다.
이번 트럼프 합의가 정말 중요한 이유도 650억 배럴을 당장 시장에 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망가진 생산 시스템을 미국 자본과 기술로 다시 움직일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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